헌법재판소 결정을 통해 낙태죄가 효력을 잃은 지 3년 하고도 9개월이 지났다. 헌법재판소가 주문한 개정입법 시한을 넘긴 2021년부터는 형법상 ‘낙태의 죄’에 해당하는 법적 효력도 완전히 사러져 우리나라에서 임신중지는 더 이상 처벌의 대상이 아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사회에서 안전한 임신중지는 가능하게 되었을까? 여성들의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는 보장되고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우리 사회의 공적 시스템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고 있다. 아직까지도 안전한 임신중지에 관한 공식적인 정보조차 존재하지 않고, 병원들은 책임 있는 상담과 진료를 회피하고 있다. 임신중지가 절실한 경우에도 병원비 부담을 안고 임신중지 약물을 찾아 전전긍긍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나마도 안전성이 공인된 국제 비영리단체의 임신중지 약물 제공 홈페이지도 법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국내 접속을 차단시켰다. 최근에는 임신중지 약물로 알려진 ‘미프진(미프지미소)’의 국내수입까지 무산되면서 정부를 향한 비판과 우려가 거세지고 있다.
임신중지는 크게 약물과 수술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현재 임신중지에 관한 의료체계가 전무하다 보니 수술을 하려고 해도 어느 병원에서 받을 수 있는지 알기도 어렵고, 의료비는 적정 가격조차 산정되지 않아 병원마다 비용이 제 각각인 상황이다. 건강보험 적용도 되지 않아 의료비 부담도 크다. 반면, 약물을 통한 임신중지는 수술보다 비용도 저렴하고 위험성도 적으며, 임신 전 기간에 걸쳐서 사용할 수 있어 안전성과 효율성 모두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동안 임신중지 약물 도입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식약처에서 수입이 무산된 ‘미프진(미프지미소)’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2005년부터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으며, 이미 70여 개 국가에서 사용하고 있을 만큼 임상시험 자체가 불필요한 검증된 약물이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심사에만 1년 5개월 이라는 시간을 소요했던 것이다. 결국 여성들은 합법적으로 약물을 이용한 임신중지를 선택할 수 없게 되었고, 온라인에 비공식적으로 떠도는 출처분명의 약들을 찾아야 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을 지속하게 됐다. 여성들의 안전과 건강이 이토록 위협받는 상황에 대해 정부는 심각한 책임을 느껴야 하며, 지금이라도 임신중지 약물 도입을 비롯해 공적인 보건의료 체계를 갖추는 것, 이를 위한 입법안 추진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